앞이 깜깜할때 빛이 되어주는
- 이수진
- Sep 14, 2017
- 3 min read

2003년에도 그랬다.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막힐 것 같은 공포감, 그리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음에 느끼는 무기력함과 아이들을 보호하여야 한다는 강박감에 밤잠을 설치며 하루하루를 버텼더랬다. 우리가족은 중국 한 지방 대학에서 선교사역을 하고 있었는데, 그해 초봄, SARS (Severe Acute Respiratory Syndrome)라는 호흡기 장애를 만들어 사람을 죽이는 전염병이 홍콩과 중국 전역을 강타했다. 그 병은 전 세계를 혼동에 빠지게 하며 급속도로 사람들을 전염시켰다. 기침 등의 감기증상으로 일주일 만에 사람이 죽으니 인터넷에서는 난리도 아니었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거짓말을 해 대며 별일 아니라고 쉬쉬했고,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된 후, 세계보건기구까지 나서서 중국을 압박한 후에서야 갑자기 태도를 바꿨다.
우리부부가 강사로 있던 대학은 이틀 만에 빨간 벽돌로 이중 담을 쌓았고, 학교정문에는 커다란 자물쇠가 채워졌다. “외부인 출입금지”라는 푯말이 세워지고, 학생들과 교수진들은 감옥 아닌 감옥에 갇혀 버렸다. 우리 아이들은 15살과 11살이었는데, 한참 먹을 나이에 학교에서 주는 급식만으로 연명을 하다 보니 몇 개월 만에 살이 쭉 빠지고 나중에 미국에 돌아와 병원을 가니, 아들아이는 영양실조에 걸려있었다. 학교 안에서는 기침만 해도 격리조치를 시켰고, 정부에서는 이들을 병원에 감금시키기까지 하였는데, 멀쩡한 사람들도 그런 병원에서 SARS에 옮아 죽기까지 하였다. 그것은 공포, 그 자체였다.
며칠이 몇 주가 되고, 우리가족은 더 이상 중국에서 버티는 것은 무리이다 싶어, 북경을 걸쳐, 인천 공항을 경유하고 LA의 집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게 되었다. 일 년간 가르치던 학생들과 다른 외국인 강사들과 눈물로 작별을 하고 북경에 도착하니 늘 북적거리던 공항은 시골 버스터미널 모양 텅 비어있었고, 마스크를 한 군인들이 총처럼 생긴 체온계를 이마에 대고 쏘는 것이었다. 경악할 지경이었다. “패스”라는 말이 떨어져야 통과다. 그렇지 않으면 또 병원으로 끌려가는 상황에, 우리는 파랗게 질려 수없이 속으로 기도를 외쳐댔다. “하나님, 제발 감기에 걸리지 말게 해주세요. 체온이 올라가지 않게 해 주세요,”라고.
그렇게 온 식구가 통과되어 다음날 출발할 항공편을 타기위해 근처 호텔에 투숙하였다. 그런데, 거기서도 총 같은 체온계를 이마에 갖다 대었다. 이제는 그런 물건만 봐도 가슴이 조마조마 했다. 호텔 방에 들어서서야 온 가족이 한숨을 돌리고 동그랗게 둘러앉았다. 우리는 하나님께 앞날을 의탁 하는 기도를 시작했다. 각자 하얀 도화지와 연필을 잡았다. 기도 후 머리에 떠오르는 이미지를 그리고 떠오르는 생각을 적기로 하였는데, 그중 유독이 11살 딸아이의 그림이 특이했다. 그 아이는 6층짜리 건물을 그렸는데, 4층에 우리 선교단체 이름을 크게 적었다. 그리고 무사히 미국으로 돌아온 우리가족은 그 그림을 잊어버리고 살았다.
SARS가 진정된 몇 년 후, 우리 선교단체에서는 남편을 통해 그 지방에 언어학원을 세워 은밀하게 제자훈련을 하게 되었고, 그 학원은 6층짜리 건물의 4층에 자리 잡게 되었다. 수많은 중국 젊은이들이 그 건물에서 제자훈련을 받고 크리스천 리더들이 되기도 하고, 외국에 나가 공부하고 중국으로 되돌아가 능력 있는 지도자가 되었다. 그 당시는 몰랐었는데, 수년 후 짐정리를 하던 중, 딸아이의 그 그림이 발견되었을 때 우리 모두 그 6층 건물이 우리 언어 학원이었음을 깨달았다. 전염병이 돌고 있던 전쟁과 같았던 그 상황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셨던 것이다. 미래가 보이지 않고 앞날이 깜깜할 때, 빛과도 같이 우리에게 조그만 소망을 갖게 하셨던 것이다.
지난 몇 주간, 허리케인 하비 Hurricane Harvey를 통해 휴스턴과 근방 지역에 사는 우리 모두에게 닥친 재해는 우리의 안정과 평안을 뒤흔들어 놓았고, 생명을 잃기도 하였으며, 가정의 따스함을 담은 집들을 침수시키고 말았다. 물론, 자신을 아끼지 않고 모르는 이웃을 향해 생명 줄을 던지기도 하고 나의 것을 나누어주는 인간애를 보여주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지역 곳곳 앞마당에 쌓여진 건물자재와 가구들은 지난주까지 찼던 검은 시궁창 물을 기억하게 한다. 그 공포의 물이 차오르던 시간들을…….
자연재해, 전쟁, 또는 사고 등의 극심한 외상에 노출된 후 심각한 스트레스로 인하여 사회생활에서 일정한 제약이 나타나는 증상을 급성 스트레스 장애 (Acute Stress Disorder)라고 한다. 이는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 (PTSD-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와 마찬가지로 스트레스에 노출된 뒤 해리성 증상(정서반응의 마비, 멍한 상태, 비현실감, 이인증, 해리성 기억상실), 외상적 사건의 재경험 (외상적 사건에 대한 반복적인 꿈, 환각), 외상을 회상시키는 자극에 대한 과도한 회피, 과도한 불안이나 증가된 각성 증상 등이 나타나지만 대부분 4주 이내에 사라진다는 점에서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와 구분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급성 스트레스장애 [急性 ─ 障碍, acute stress disorder] (특수교육학 용어사전, 2009., 국립특수교육원)
이런 증상이 나면 우리는 당황하게 되고 ‘나만 이상한가?’하여 혼자 삭히려 한다. 집중이 안 되고 기억력이 떨어지며, 누군가 머리를 한 대 때린 것같이 멍하다. 수면장애로 잠을 못 이루며, 꿈을 꾸는 듯 현실이 있는 지 아닌지 혼동이 되기도 한다. 도망가고픈 욕구나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 강해지며, 작은 일에 가족 간에 다툼이 잦아지기도 한다. 또, 남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 처할 수 있는 데, 자존심이 많은 사람은 견디기 힘든 상황일 수 있다. 절망감에 외로움에 혼자 괴로와 할 수 있다.
트라우마를 겪으면서 아픔을 외면하지 말자. 속으로 밀어 넣으면 압력솥에 밥이 익는 것 같은, 술이 익으며 가스를 뿜어내는 것 같은 작용을 마음속에서 하고 있다. 괴로움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표출하여 서로가 서로를 더 아프게 할 수 있다. 압력솥의 단추를 하나님께 맡기자, 괴로움을 기도로 표출하자. 하나님께 상한 마음을 드리자. 오직 진정한 위로는 위에서 오는 고로…….
사방이 막혀있는 듯 앞이 깜깜할 때, 위에서 빛을 비추시는 이가 있다. 잠잠히 마음을 추스르고 머리를 숙일 때, 주님께 의지하자. “하나님,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한계가 있음을 고백합니다. 나의 앞일이 보이지 않습니다. 가슴이 답답합니다. 저에게 앞일을 조금 보여주세요. 저에게 주님의 보호하심을 보여주세요,”라고 기도 할 때, 주님이 보여주시는 이미지를 기록해보자. 수년 후, 뒤돌아보았을 때, 그림으로 소통하시는 주님의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이사야 43장 1-2절)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