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틀어진 자화상
- 이수진
- Jul 10, 2017
- 3 min read

창세기에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시는 장면이 인상적인 것은 아담을 만드실 때 드린 그 정성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만물을 창조하실 때 그저 한마디 툭 던지심으로써 심플하게, 그리고 위대하게, 빛을 만드시고 산을 만드시고 온갖 동물들을 만드셨던 하나님이 아담을 지으실 때에는 손으로 직접 흙을 빚으시고, 자신의 모습을 닮게 하고, 또한 생기를 불어넣으셨다고 했다. 말로만 해도 지어졌을 창조물이었는데, 우리 인간은 하나님이 직접 손을 더럽혀서 그의 체온이 닿아 만들어진 세상에 단 하나뿐인 귀한 존재인 것이 아닌가!
그래서인지 찰흙으로 하는 미술상담은 자아에 관해 다룰 때 매우 효과적이다. 흙에 손을 묻히고 그 질감을 느끼고 딱딱하던 물체가 나의 체온과 힘에 의해 부드러워짐에 나와 하나가 되는 것 같은 그 동작 하나 하나가 치유의 도구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유아시절에 느꼈던 감정들이 되살아나, 잘 될 때 느끼는 기쁨도, 잘 안 될 때 느끼는 짜증도 표출을 할 수 있다.
이 날도 중국에서 미술상담 시간으로 주제는 찰흙으로 자화상 만들기였는데, 고등학교를 갓 마친 여학생 하나가 잘 하나 싶다가 갑자기 찰흙을 주먹으로 꽝꽝 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마음대로 잘 안 만들어 진다는 것이었다. 얼굴이 벌겋게 흥분되어 있었다. 무의식속 깊은 곳에 숨겨놓았던 자아와 싸우는 듯했다. 조금 진정된 후, 찰흙 다루는 법을 좀 더 익힌 그녀는 기가 막힌 작품을 만들어 놓았다. 몸체 보다 더 큰 머리에 뒤틀려진 몸체, 그리고 하늘을 향한 거대한 입……. 그 모습에서 사람의 형체를 닮은 것은 작은 코 정도였다.
그녀의 작품 설명은 보는 이들의 마음을 더 아프게 했다. 어린 시절 아버지는 어머니와 자신을 버리고 떠돌이 생활을 했단다. 몇 년이고 없어졌던 아버지 존재가 다시 나타난 것은 어머니와 자신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아버지를 위해 기도하고 기다린 4년 후였다. 이제는 아버지도 자신의 죄를 회계하고 크리스천이 되었는데, 이 여학생의 마음에는 기쁨보단 슬픔과 분노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이 더 이해되지 않아 속으로 혼자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몸이 뒤틀리게 쌓아 놓았던 감정들과 소리쳐 말하고 싶은 것들이 이 여학생의 찰흙 작품에 고스라니 표출되었다. 나는 그녀의 가느다란 어깨를 잡고 말했다. “소리쳐 말해 봐요. 뭐가 그리 슬퍼? 뭐가 그리 화가 나?” 그녀는 드디어 소리 지르기 시작했다. “아빠가 왜 나를 버렸어요? 아빠가 미워! 아빠는 날 사랑하지 않아! 나도 사랑받고 싶었는데…….” 그녀는 화를 내고 나중에는 흐느껴 울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감정을 거울처럼 다시 보여주기 위해 내 입으로 그 감정들을 나열해 주었다. “아빠가 나가 버려서 많이 아팠구나. 아빠한테 사랑 받고 싶었구나? 얼마나 외로웠을까? 얼마나 무서웠을까? 얼마나 보고 싶었을까?” 울던 그 여학생은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며, “내가 미워서 아빠가 떠났었던 건 아니지요? 내가 뭘 잘못했었나요?”라고 물었다. 그녀의 질문은 질문이 아닌 답이었고, 정말이지 오답이었다. 그래서 정답을 이야기해 주었다. “아니요. 그것은 자매 아버님의 죄였어요. 자매님의 잘못이 아니에요,”라고.
그리고는 세상 심리학에서 다루지 못하는 죄에 관한 부분을 다루게 되었다. “죄”, 그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해결해 주실 수 있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우리 인간만이 행할 수 있는 권리이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다시 물었다. “어머니와 자매를 버려놓고 나갔었던 아버지를 용서할 수 있나요?” 그녀는 한참을 우물쭈물 했다. 그래서 다시 함께 기도했다. 그녀는 하나님께 아버지의 잘못을 하나하나 고했다. 아이가 엄마한테 고자질하는 것처럼. 그리고 자신의 느꼈던 감정도 다 드렸다. 아팠고, 슬펐고, 외로웠고, 그리웠던 마음도, 사랑 받고 싶었던 구멍 난 마음도 주님께 드리니 한결 얼굴이 밝아졌다.
마지막으로 내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버지를 용서해요. 하나님 아버지께서 날 치료하시기 믿어요!” 그 후 그녀는 나의 통역사로 중국 사역의 간사로 2년간 일하다가 말레이시아의 한 미술 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 현재 중국으로 돌아와 결혼도 하고 건강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어린 시절 애정 결핍으로 자아가 뒤틀어졌었던 이 자매의 이야기는 너무도 흔하게 들을 수 있는 상담 이야기이다. 아빠 엄마에게 풍성히 사랑 받고 안정감 속에서 성장해야 성인으로 세상과 마주할 때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데, 그렇지 못하고 자라난 사람들은 쌓아놓은 감정선이 너무 높아 잘못 분출되고 가장 가까운 사람과 자신을 다치게 할 수 있다. 하나님의 모습으로 만들어진 우리 인간이 자신의 모습을 꼭 닮은 자녀들에게 그 분의 사랑을 그대로 비춰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렇게 못할지라도 용서함으로 서로를 품을 수 있음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하나님을 가장 닮을 수 있는 권리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수진
남부개혁대학 미술상담학 교수
YWAM 강사
Fuller Theological Seminary, MA in Psychology (Family Studies)
George Mason University, BFA in Studio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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