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괜찮아요
- 이수진
- Jul 21, 2017
- 2 min read

중국에서 선교사로 조심스레 사역하던 중 일어났던 일이다. 어느 여름, 시골 산골마을에서 크리스천 아이들을 모아 3박 4일로 여름 성경학교를 열었다. 정부에서 아이들 교육에 관하여 특히 예민하기 때문에 다른 사역보다 더 조심하고 더 많은 기도로 준비했다. 내게도 강의 시간이 주어 졌기에 하나님의 꿈에 대해 나누었다. 또랑또랑한 어린 눈망울들을 바라보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품으시는 큰 꿈들과 또한 그 꿈들이 깨어질 때 아파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나누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본인들의 아픔이나 슬픔을 그림으로 표현해 보라고 했다.
강의 후 각 반별로 나뉘어 선생님과 함께 자신들의 그림을 나누고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갖게 했다. 그런데 한 선생님이 나에게 고등학교 남학생 하나를 데리고 왔다. 소심하게 생긴 이 학생의 그림은 보는 모든 이의 등골을 오싹하게 하는 그림이었다. 미술상담을 수년간 해온 나도 그런 그림은 본적이 없었다.
또렷한 눈 하나가 큼지막하게 도화지 한 가운데에 자리하고 있고, 그 눈을 대각선으로 관통하고 나간 대검에, 그리고 흐르는 검은 핏자국인지 눈물인지가 눈에서 흘러내리고 있고. 그 옆에 박혀있는 화살하며, 그 모든 것 위에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두 눈을 부릅뜬 뱀의 머리하며, 무시무시한 그림이었다.
아, 이럴 땐 무엇을 말해야 할까 순간 멈칫 했다. 그리고 속으로 짧은 외마디와 같은 기도를 외쳤다. “하나님, 도와주세요!” 침착하게 입을 뗐다. “무슨 일이 있었니?” 소년은 고개를 숙이고는 아무 일도 없단다. “그래? 너희 가정은 다 괜찮니?” 나는 다시 물었다.
중국어를 잘 못하는 나는 통역사의 입을 주시하며 소년의 얼굴에서 어떤 말이 나올까 살피고 있었다. 잠시 후 질린 얼굴로 말을 더듬는 통역사를 통해 들은 말은, “이 아이 아버지가 몇 년 전에 자살을 했대요. 그리고 어머니는 정신병원에 있답니다. 그런데, 본인은 괜찮대요,”였다.
“괜찮다”라는 말로 감정을 숨겨버리고 무표정의 가면을 쓰고 있던 이 소년의 마음의 눈은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아픔이란 제목으로 그림을 그리라는 내 말에 기다렸다는 듯 마음의 아픔을 토해낸 것이었다. 소년이 이 그림을 그리기 전까지는 아무도 이 소년의 아픔을 보지 못했다. 그리고 언어로는 결코 뱉어내지 못한 슬픔과 고통을 그림이란 매체를 통해 표현한 것이었다. 몸의 병도 그렇듯이 마음의 병도 진단을 받고 그것을 먼저 인정하였을 때 치료가 가능하다.
이 아이, 결코 괜찮지 않았다. 그리고 누군가에 자신의 마음을 이야기 하고파 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소년의 내면의 아픔을 가지고 함께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었다. 모든 아픔의 치료자 되신 하나님께 아픔을 드리고 치유의 손길을 기도했다. 자신을 돌보지 않고 생을 마감했던 아버지를 용서하고, 어머니와 자신을 치유해 달라고 소년은 기도했다. 이 그림은 우리에게 보내는 구조요청이었고, 하나님께 드리는 소년의 기도였다.
우리는 자신에게 닥친 위기에 대처하는 방법들이 있다. 특히 난치병 진단을 받거나 소중한 가족을 잃거나 하는 깊은 상실을 경험하면 먼저 거의 모든 사람들은 사실을 부정한다. “난 아니야. 검사 결과가 잘못 됐나봐.” “아버지가 돌아가시다니, 그렇게 건강 하셨는데……. 그럴 리가 없어.”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리고 많은 경우 현실을 도피한다. 현실이 너무 아파 땅에 고개를 파묻고 안 보려한다. 그렇게 하면 악몽에서 깨어날 것처럼…….
미쳐버릴 것 같은 현실 속에서 소년은 “난, 괜찮다.”라는 말로 자기 마음에 최면을 걸고 마취제를 투여하듯 매일 매일 현실을 외면했었다. “많이 아팠겠구나. 하나님도 너의 아픔에 통곡하고 계신단다. (이사야 4:22)” 나의 위로와 다른 선생님들의 기도가 이어졌다. “하나님, 우리 친구는 진짜 많이 아파요. 무서워요. 도와주세요. 이 친구의 미래를 책임져 주세요. 도움의 손길들을 보내 주세요.” 우리는 소년을 대신하여 울어 주었다. 감정의 뚜껑을 닫아 놓은 듯 무표정이었던 소년의 얼굴이 붉게 상기 되었고, 마지막 작은 목소리로 그는 “아멘”을 외쳤다.
괜찮지 않아도 된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해도 된다. 이젠 아프다고 이야기해도 된다.
교수 이수진
남부개혁대학교 미술상담학 교수
예수전도단 열방대학 YWAM 강사
풀러신학교 심리학 가정학 석사
죠지메이슨 대 미술 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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